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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연결체 본문

스타크래프트
일명 '스타' 로 불리는 이 게임은
저와 동년배는 물론,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까지
안 해본 남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린 게임이었습니다.
그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고
세계 최초로 군부대 프로게임단까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스타' 게임의 배경은 아주 먼 우주 행성입니다.
그 우주 속에서 테란(인간), 저그, 프로토스라 불리는 세 가지 종족이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PC방에 가면 어김없이 '스타'를 하곤 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늘 '프로토스'라는 종족을 선택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화면 중앙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거대한 중심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건물 이름이 외국어로 되어 있었는데
그냥 느낌상 '기지'나 '본부'라는 뜻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건물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토스 종족의 시작이자 중심이 되는 그 건물의 이름은 바로
책의 제목과 동일한
넥서스(Nexus)
입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전작의 큰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을 출시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았던 덕분에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는 한글화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전작의 중앙 기지의 이름은 '넥서스'에서 한글로 '연결체' 로 번역했습니다.
게임 속 유닛들은 각자 여러 가지 대사를 하는데
영어로 말하는 통에 무슨 뜻인지 몰랐던 유닛들 대사도 전부 우리 말로 더빙이 되었습니다.
프로토스를 플레이 하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대사는 '우리는 하나다.' 입니다.
'연결체' 와 '우리는 하나다'.
게임 속에서 나오는 이 단어와 대사는
유발 하라리의 이 넥서스라는 두꺼운 책의 전체를 관통하며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넥서스, 즉 연결체는 우리를 하나로 묶은 모든 것을 뜻합니다.
종교나 국가처럼 눈으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것을 중심으로 교인이나 국민으로 소속감을 가지게 됩니다.
두 개의 무형의 존재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지며 연결이 되어 집니다.
우리 인류는 끊임없이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징기스칸은 영토를 확장하며 거대한 하나의 제국을 구축하려고 했고
카톨릭과 기독교는
그들의 종교를 다른 넓은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 건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그 '연결'에 힘을 보탰습니다.
과거 인쇄 기술의 발달로 구전되던 지식이 책을 통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이후 통신 기술의 혁신은 그 지식을 국경 너머로 전파했습니다.
지금의 IT 기술로 '연결'은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방구석에 누워서 지구 반대편의 뉴스나
세계 최고 대학의 강연을 실시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외국어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화면에서 한글 자막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만이니까요.
이제 스마트폰만 쥐고 있다면
우리는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은 물론 언어의 장벽마저 손쉽게 뛰어넘어
전 세계와 완벽히 '연결'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고도로 발전된 문명인 프로토스처럼
이제는 거의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연결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말합니다.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의 발전에 비해
연결의 주체가 되는 '연결체'에는 변화나 발전이 거의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대표적인 인류의 '넥서스' 중 하나인 성경을 그는 예로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에 나온대로 생활하며 안식일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오래 전에 쓰여진 '넥서스'이기에
문장과 단어를 세밀하게 해석하면서 지키려고 하면
그로 인해 어이가 없어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예로 들어 줍니다.
(*특정 종교나 민족에 대한 비하가 아님을 밝힙니다.
오롯히 책의 내용과 작가의 글과 주장입니다. 참고로 유발하라리는 유대인-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랍비들은 전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전기는 불과 비슷하며 오래전부터 불을 붙이는 것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루클린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유대인 노인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기 위해 100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통파 유대인들은 '안식일 엘리베이터'를 발명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건물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모든 층에서 멈추기 때문에
사람이 전기 버튼을 누르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AI의 등장으로 이 오래된 문제에 반전이 일어났다.
AI는 안면인식을 이요해 엘리베이터를 당신이 사는 층으로 순식간에 데려다줄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은 안식일에 신성모독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이 책에서 나오는 웃지 못할 유대인들의 일화는
고착화된 넥서스가 현대 기술과 만났을 때 얼마나 기묘한 모순을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언제나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유일하면서도 완벽한 '넥서스'를 갈구해 왔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같은 거대한 종교가 그랬고
공리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같은 수많은 이념과 체제가 그러했습니다.
인류는 이러한 강력한 넥서스를 중심으로 문명의 신대륙을 개척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자신이 믿는 넥서스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으며
약탈과 빈곤 속에 수많은 이를 굶어 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역사 경험을 통해 세상에 완벽한 '넥서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넥서스만이 유일한 정의라고 믿으며
다른 이들의 넥서스를 부정하고 파괴하려 듭니다.
이 지점에서 스타크래프트 2의 '넥서스'가 '연결체'로 번역된 진짜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됩니다.
게임 속 연결체는 맵 곳곳에 멀티(확장 기지)를 지으며 끊임없이 늘려가는 건물입니다.
하나의 본진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연결체들이 사방에 살아 숨 쉬고 있다면 결코 게임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와 사회도 그래야 합니다.
넥서스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유연해져야 하며
우리가 가질 넥서스는 결코 하나여서는 안 됩니다.
단 하나의 거대한 알고리즘이나 독점적인 권력, 맹목적인 사상이 우리를 통제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고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연결체(Multiple Nexuses)'들이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다."
프로토스의 이 외침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결코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독단이 아닌 공동체에 대한 깊은 믿음과 신뢰
그리고 그 연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숭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하나 됨은 다름을 지우는 획일화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연결하는 신뢰에서 나옵니다.
주말 오후,
각자의 넥서스가 유일한 정의라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세차게 휘날리는 사람들이 있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여전히 뉴스와 유튜브 영상에는 부정선거와 음모론 댓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줄 또 다른 '연결체'를 짓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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