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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에 대하여 (feat. 할로우 나이트-실크송)

스푸♡ 2025. 8. 24. 23:30

 

 
2017년 2월 25일, '할로우 나이트'라는 *인디 게임이 출시했습니다.
곤충들이 사는 왕국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벌레들 사이에 점점 퍼져가는 전염병과 그것을 막기 위한 사슴벌레의 모험과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개발자 단 둘이서 개발을 시작한 이 게임은
둘이서 처음 만든 게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아주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인디게임-대형 게임 회사의 자본이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개발팀과 개인이 독립적으로 개발한 게임

 
깔끔한 그래픽과 UI, 게임을 할수록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토리, 개성있는 캐릭터(벌레인데 귀엽다니...),
다채로운 수집요소와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보스전,
거기에 이 모든 요소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배경 음악까지
게임 내 많은 요소 중 어느 하나 전혀 빠질게 없는 명작 중의 띵작이었죠.
심지어 가격마저 고작 만6천원...
설령 이 가격의 두세 배로 구매해도 전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할로우 나이트'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이 게임만 주구장창 했던 기억이 납니다. (스팀 플레이타임이 300시간 정도가 넘습니다.^^;)
 
'할로우 나이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 둘은 큰 돈을 벌었고, Team Cherry라는 게임 회사까지 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2019년 2월, 전 세계 게이머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소식을 전합니다.
바로 '할로우 나이트' 세계관에 등장했던 신성둥지의 공주-'호넷'을 주인공으로 한 
차기작 '실크송'을 개발한다는 발표였습니다.
 
수많은 팬들은 '실크송'의 출시일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았지만
할로우 나이트 팬들은 'Team Cherry'가 곧 게임을 발표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개발 진행 관련 소식이나 티저 영상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게임쇼에 잠깐 데모버전이 소개되며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또 다시 그 뒤로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죠.
원래 출시를 약속했던 2021년이 되서야 출시 연기 소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온갖 추측과 소문이 돌았습니다.
"회사 내에 불화가 있다."
"외주를 맡겼다가 망해서 다시 개발 중이다."
"다음 달, XBOX 게임패스 단독 출시가 결정되서 리스트에 잠시 떴다가 내려갔다."
희망적인 뉴스와 불길한 루머가 계속 엇갈리며
팬들의 마음은 기대와 실망 사이에 갈팡질팡했습니다.
 
이 오랜 기다림 속에서 저의 눈에 들어오는 한 유튜브 채널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Daily Silksong News.

 
 
이 채널은 실크송의 예정된 출시일이었던 21년부터 시작된 걸로 보입니다.
무려 1,683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실크송 관련 영상을 올렸습니다. 
출시일이 공개 되었나, 새로운 소식이 나왔나, 티저나 데모판이 풀리지 않았나.
내용이 크던 작든 상관없이 인터넷에 뜬 루머나 기사를 정리해서
매일 영상을 만들고 업로드하며 긴 기다림을 이어간 것입니다.
 
1,683일, 대략 4년 7개월이 넘는 시간입니다.
매일 매일 '실크송'이라는 똑같은 주제 하나만을 붙들고
이런 영상을 만들어 낸다는 건 단순한 집착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건 애정과 열정, 그리고 꾸준함이 함께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위대한 기록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5년 8월 21일, 드디어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바로 '실크송'이 출시일을 Team Cherry에서 2025년 9월 4일로 발표한 것입니다.
발표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곧장 Daily Silksong News 채널에 접속했습니다.
매일 업로드되는 영상의 하단에는 늘 "OOOO days since reveal"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그 자리에 "Left 14 days"라는 글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상 아래에는 저와 같은 마음으로 '실크송'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남긴 6천 5백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형제여, 드디어 자유를 찾았군요.'
'우리의 고통이 끝났네요.'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는 안도와 기쁨으로 재치가 넘치는 댓글들이 화면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의 마음을 울린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이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꾸준함이 결과를 앞당기지 못합니다.
이 채널의 주인장이 영상을 매일 올렸다고 해서 실크송이 더 빨리 출시되는 건 절대 아니니깐요.
하지만 이 채널의 꾸준함 덕분에 그 긴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만들고 하루하루를 조금씩 다르게 채워갔던 거 같습니다.
그건 비단 영상을 만드는 사람 뿐만 아니라, 영상을 보며 소식을 함께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8월 21일은 너무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단순히 게임 출시가 발표된 날이 아니라,
Daily Silksong News를 만든 분에게는 1,683일 동안 이어온 꾸준함이 보상받은 날이었고
저와 수많은 게이머들에게는 그 보상의 순간을 함께 목격한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결과만 바라보다가 지쳐버리는 때가 많습니다.
열정과 노력이 늘 반짝반짝 빛나면 좋겠지만
눈부신 성취가 없다면
결국 빛나던 것들이 힘을 잃고 사라지는 순간이 찾아오곤 합니다.
 
최근에 제가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이했던 거 같습니다.
 
오늘도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쓰려 했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블친님들의 블로그만 돌아보다 나왔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댓글도 별로 남기지 못하고 그저 눈팅만 하다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요즘 아무것도 못 쓰겠더라구요.
뭔가 블로그를 통해 눈부신 결과를 기대했던 것도 아님에도
이런 저런 주변의 일들로 인해
블로그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쭈욱 블로그를 이어오신 '비말'님
10년 넘게 시를 주제로 시낭송 유튜브와 블로그를 함께 하고 계시는 '프시케psyche'님
2626일째 빈곤일기와 자작 그림을 함께 올리시는 '샛노란개'님
...
그 외에도 오랫 시간동안
블로그라는 소통의 공간을 단단하게 채워 오신
많은 블친님들의 흔적을 오늘 둘러 보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꾸준함 앞에서 이렇게 다시 마음을 잡아봅니다.
 
오늘 두서없이 억지로 글 한 편을 쓴 것 같다 아쉬운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게임을 주제로 해서 평소보다는 조금 편했던 거 같기도 하네요.
다른 블친님들 블로그를 방문했을 때,
겸사겸사 댓글도 잔뜩 남겼어야 했는데
요즘 필력이 떨어지니 댓글마저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도 오늘 주말 늦은 시간까지 어렵게 마무리한 이 포스팅 하나가
다음 주부터는 다시 블로그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큰 힘이 되리라 한번 믿어 볼까 합니다.
 
p.s 그런데 실크송 출시하면 게임하느랴 블로그 글 못 쓸 것 같은데 걱정이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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