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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와 남한산성 본문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역사에 대한 의견은 정답의 문제라기보다 해석의 다양성 안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제가 평소 독서와 매체를 통해 접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일 뿐입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이런 시각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설 '남한산성' 의 한 장면을 발췌해 봅니다.
-저것이 무엇이냐?
칸이 물었다.
-조선국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명을 향해 원단의 예를 행하는 것입니다.
...(중략)...
임금이 무도를 마치고 다시 북경을 향해 절했다.
종친과 신료들이 임금을 따라 절했다.
본래 망궐례(望闕禮)는 신하가 국왕의 생일이나 명절에 임금에게 절을 하는 의식입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의 임금이 명나라 황제를 향해 이 의식을 행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청나라의 침략으로 남한산성에 고립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인조는 명나라 황제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는 망궐례를 거행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이 장면은 고스란히 재현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많은 중국 관객이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계승했다는 청나라는
그 의식을 지켜보며 비웃던 침략자였다는 사실이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당시 두 나라가 군신(君臣) 관계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망궐례뿐만 아니라 사신을 극진히 대접하고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쳤던 사실을 근거로 할 때
당시의 조선이 명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국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동북아시아 특유의 외교 질서 속에서
이를 단순한 속국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그 주장과 근거에 대해 이 자리에서 일일이 반론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역사관의 이면에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정복한 역사는 자랑스럽고,
반대로 패배하거나 정복당한 역사는 부끄럽고 숨겨야 한다’
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역사는 사실과 기록에 근거해 평가되어야 합니다.
후대의 입맛에 맞게 선별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변형하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에 가까워집니다.
일부 역사 다큐멘터리나 소수 학자들의 주장 속에서 등장하는
‘동북아 특유의 외교 질서’라는 표현이
역사를 설명하기보다는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주변국을 보면 이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영토와 경제력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강대국임에도
자신들에게 불편한 과거를 은폐하거나 교육 과정에서 축소한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옹졸하고, 민망하게 느껴집니다.
승리의 역사는 달콤합니다.
광개토대왕의 동아시아 정복 활동,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이런 승리의 기록은 책으로 읽어도, 영화로 보아도 가슴이 뛰고 벅차 오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소위 '국뽕'이 차오르는 우월감에 도취됩니다.
그에 비해 패배의 역사는 마주하기가 괴롭습니다.
남한산성의 삼전도 굴욕은 치욕적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남루한 차림으로 타국의 군주 앞에서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부끄럽고 가슴 아픈 참담한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삼전도 굴욕의 역사가 크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그날의 치욕을 선조들은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임금이 어떻게 칸의 앞까지 나아갔는지
어떤 옷을 입고 몇 번 머리를 조아렸는지까지 소상히 적었습니다.
후손들 역시 그 불편한 기록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꺼내 읽기조차 괴로운 역사를 소설로 만들고 영화로 재현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승리의 역사보다 훨씬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를 준비하라’는
가르침은 오직 역사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 어떤 정복의 기록보다 지금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더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느 나라처럼 역사를 숨기고 왜곡하기 바빴다면
저는 그것이 오히려 부끄러웠을 겁니다.
중국과 일본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징대학살, 위안부 강제징용,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와 같은 사건들은
명백한 증거와 기록이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왜곡되거나 외면하고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워 보이지 않던가요?
얼마 전, 한단고기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관련 서적을 읽은터라 전반적인 책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 한 말씀 드리자면
고대 역사는 사료가 부족해 과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 보니 약간의 사실에 많은 상상과 해석이 더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록이 생생히 남아있는 몇 백년 전의 역사마저 후세에 의해 해석과 상상력이 더해져서 왜곡되고는 합니다.
미국이 콜럼버스를 개척자로만 포장하여 원주민 학살의 역사를 희석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에게 포장된 승리의 역사가 필요한 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반도에서 정복의 기록 대신 침략의 기록을 첨가한 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 배울 수 있을까요?
몇 천년이나 지난 고대의 역사이자
기록마저도 너무 부실한 역사인 한단고기를
단지, 정복과 승리가 많이 채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이제와서 우리의 역사로 인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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