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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인생 - 아직 4발이나 남았다. 본문

끄적끄적

아홉살인생 - 아직 4발이나 남았다.

스푸♡ 2025. 5. 13. 08:00

 
2009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 누구보다 우울했죠.
스물 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생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면 생일이었고
생일이 지나면 이제 서른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사실, 이미 서른이었죠.
우리나라 나이로는 진즉 이십대가 지나버린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만 나이로 계산하며
'나는 아직 스물 아홉이다'라고 애써 우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빼도 박도 못하는 딱 서른살이 되었습니다.
 
아홉살에서 열살, 열 아홉에서 스무살 될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면 철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때는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들뜬 기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른이 될때는 한없이 우울했고 왠지 모르게 슬펐습니다.
 
그나마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는 조금 나았습니다.
그때는 나이듦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미 오래 전에 받아들였기 때문에 조금은 덜 우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홉살 인생
 
서울 어느 가난한 산동네 사는 백여민이라는 아이의
아홉살에서 열살로 넘어가는 그 한 해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기 소설입니다.
책을 덤덤히 읽고 마지막 에필로그를 넘기던 중,
문득 제 마음을 붙잡는 문장이 있어 여기에 그대로 옮겨봅니다.

아홉은 정말 묘한 숫자이다.
아홉을 쌓아 놓았기에 넉넉하고 하나 밖에 남지 않았기에 헛헛하다.
그 아홉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하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이건 모두 십진법의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지만
그게 때때로 우리를 공포스럽게 만들곤 하니 우습다.
이게 다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이리라.
비단 숫자뿐 아니라,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출발점과 도달점에 연연해하는 것부터가 
고정관념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도달점에 닿는 순간, 그건 곧 출발점이 되고 마니까.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중단없이 쭈욱 진행되는 과정일 뿐인 것이다.

 
이제 몇 년 뒤면
저는 또다시 십진법의 숫자 놀음에 빠져
우울함 속에서 허우적 거릴 위기에 처하게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맞이하게 될 나이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지천명(知天命)
공자께서는 오십이면 하늘의 뜻을 알게되는 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나이가 앞두고 있는데
저는 왜 벌써부터 걱정스러운지 모르겠네요.
 
하늘의 뜻을 알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홉살 인생의 작가 위기철님의 말씀대로
뒷자리는 0부터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다시 한번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다'라고 믿으며 넘겨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마음 먹으면 
예전보다는 조금 덜 우울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저 아직 오십까지는 4발이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