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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빠꾸미 본문
IT 기술은 신인 아이돌 그룹처럼 분기마다 새로운 얼굴이 등장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기술 하나를 골라 동료들과 스터디를 시작하면
다음 분기엔 또 처음 들어보는 기술이 등장하곤 합니다.
IT 업계에서 19년을 밥벌이하며 살아왔습니다.
주력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항상 새로운 기술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변화해 왔습니다.
인기 없던 기술이 어느 순간 대세가 되기도 했고
크게 뜰 것 같았던 기술이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꽤 긴 시간동안 IT 바닥에 몸담았음에도
누구에게 '이건 내가 정말 잘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매번 새로 등장하는 기술들을 따라가며
꾸역꾸역 개발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부산 사투리 중에 '빠꾸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자나 고수를 이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낚시 빠꾸미라 하면 낚시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고
요리 빠꾸미라 하면 요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인거죠.
표준어로 하자면 ‘달인’ 정도 되겠네요.
저 스스로에게 요즘 자주 물어봅니다.
'너는 대체 무슨 빠꾸미니?'
편의점 인간
이 책은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한 곳을 발췌 해봅니다.
편의점 안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열두 시가 되려는 참이었다.
마침 점심 피크타임이 시작될 시간이다.
카운터 안에는 젊은 여자가 둘 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여자는 '연수 중'이라는 배지를 달고 있었다.
계산기는 두 대였고, 둘 다 자기가 맡은 계산기를 다루느라 열심이었다.
그때 나에게 편의점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편의점 안의 모든 소리가 의미를 갖고 떨리고 있었다.
그 진동이 내 세포에 직접 말을 걸고, 음악처럼 울리고 있었다.
이 가게에 지금 뭐가 필요한지,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먼저 본능이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중략)...
나에게는 편의점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편의점이 되고 싶어 하는 형태, 가게에 필요한 것, 그런 것들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 온다.
내가 아니라 편의점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이 내리는 계시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었다.
18년이라는 시간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온 후루쿠라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계속 하는 그녀를 걱정합니다.
결국
그녀는 주변 시선과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의점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시라하'라는 백수의 꾐에 넘어가게 됩니다.
다른 직장을 알아 보기 위해 면접을 보던 중
잠시 들린 편의점에서 그녀는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
모든 것이 편의점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해 자신을 '되돌려 놓아야'한다는 걸 말이죠.
요즘 회사에서 저는 '개발' 대신에
사람관리, 일정관리, 가동율 점검과 같은
'관리' 영역의 업무가 많아졌습니다.
거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PPT 발표 자료를 만들거나
엑셀 속의 숫자를 읽고 채우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이런 업무를 하면서 속으로는 자주 생각합니다.
'나는 개발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정작
'너는 무슨 빠꾸미야?'라는 질문에 선뜻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편의점 빠꾸미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소설 속의 그녀가 부럽기만 합니다.
P.S 블로그 사진으로 이 책을 알게 해주신 applenamu님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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