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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 좀비에 대한 내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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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 좀비에 대한 내성...

스푸79 2025. 5. 28. 07:00

 
저는 공포영화를 아주 잘 보는 편입니다.
특히 좀비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 게임도 아주 좋아합니다.
 
'28일 후' 는
제가 봤던 좀비 영화 중 가장 무섭고긴장감 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좀비 영화가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좀비들은 신음소리를 내며 어기적 거리며 움직이는 대신
많은 수의 좀비들이 몰려와 위압감을 주며 공포감을 조성했습니다.
하지만 '28일 후' 이후로 좀비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좀비의 수는 적지만, 마치 육상선수처럼 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쫓기는 생존자들의 긴박감과
좀비에게 당장이라도 잡혀서 물릴 것 같은 공포감을 관객들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달리기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결국 약빨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는 달리는 것도 성에 안 차기 시작하더니
좀비들이 파쿠르를 하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차 정도는 그냥 점프로 넘어버리는 파쿠르형 좀비ㅎㅎ

 
 
 
칵테일, 러브, 좀비
 
이 책은 조예은 작가님의 총 네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그 중 세 번째 작품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일반적인 좀비 세계관에서는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국가 시스템의 붕괴와 더불어 시민들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를 막지 못해
점점 인류는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예은 작가님이 그린
좀비 세상은 인류를 위협하는 재난이 아닌
일상 속의 약간 큰 사건사고 정도로 묘사됩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큰 재난과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이지만요.
주인공의 아빠는 뱀술을 마시다가 좀비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좀비가 된 아빠를 둔 채
나머지 가족들은 일상 생활을 해야합니다.
직장도 가야하고 밥도 차리고 청소도 해야합니다.
좀비가 된 아빠를 경계하면서
원래 살던 삶을 살기 위해 계속해야 일을 해야 합니다.

그새 밥 시간이 되었는지 안방에서 아빠가 걸어 나왔다.
주연은 썩어가는 아빠를 응시했다.
텅 빈 그릇을 앞에 둔 파들거리는 숟가락 질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 초라한 모습이 생전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여서
주연은 잠시 저 사람이 정말로 죽은 게 맞을까, 하고 의심했다.
...
제일 힘든 건 평일 아침이었다.
아빠는 엉성하게 양복 재킷을 걸치고 출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좀비=공포'라는 공식을 이 젊은 작가분은 다른 시각으로 처철히 깨버립니다.
어느 영화 평론에서 읽었던 내용이 기억납니다.
좀비 영화의 효시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 이라고 합니다.
원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공포보다는 기성 세대의 낡은 이념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좀비(zombie)가 아닌 구울(goul)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좀비의 창시자께서 원래 좀비를 등장시킨 의도가 공포가 아님을 조예은 작가님께서 아셨는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좀비 이야기를 비틀어 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최근 좀비 영화를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든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링의 사다코처럼 공포심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사다코양.. 비디오 테이프에 갇혀서 얼마나 갑갑했니? 긴머리에 다듬지도 않아 앞도 잘 안 보이고.ㅠㅠ)

저 나이든 좀비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있지 않았을까?
자식들도 좀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탈출에 성공했을까?
그리고 내가 만약 좀비를 죽이면 나는 살인자가 되는거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도저히 영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공포영화 매니아로서
이제는 뭔가 좀비 대신에
새로운 장르의 공포 영화가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p.s
칵테일, 러브, 좀비는
책 제목으로 선정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네 개의 작품 중 가장 재미없는 단편이었습니다.(상대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꼭 한번 읽어 보실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