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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착해져라, 착해져라 본문

저희 안방에는 작은 화장실이 하나 딸려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급한 일이 아닌 이상,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방음 문제입니다.
어느 날인가 방 안에서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소리가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것처럼 퍼져 나왔습니다.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린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윗집 누군가가 안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겁니다.
요새 아파트들이 방음이 잘 안 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래서야... 화장실에서 방귀도 못 뀌겠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 뒤로는 안방 작은 화장실을 자주 사용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새벽마다 윗집 안방 작은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제가 6시에는 출근하려고 일어나는데
딱 10~20분 전부터 '우웩~우웩'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충 3~4일 간격으로 새벽마다 구토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덕분에 도통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 속으로 윗집 사람의 모습이 상상을 했습니다.
지난 밤 몸이 못 견딜정도로 과음을 한 뒤에
아침에 변기를 붙잡고 먹은 걸 몽땅 게워내는 장면을 말입니다.
'적당히 좀 드시지. 아침마다 시끄럽게... 그냥 한번 올라가서 말해야하나...'
속으로 그렇게 마음만 먹고선 그냥 살았습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이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입니다.
책을 읽으면 어린 소녀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 들때도 있고
평범한 주부 일기장을 훔쳐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곳 저곳을 탐방하면서 기록한 기행문 한편을 읽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과거의 추억과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시간에 순서없이 잘 버무려 놓은 책입니다.
이 책을 포함해 제가 읽은 박완서님의 작품은 총 3권.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은 책 읽는 사람까지 참 착하게 만드는 글 솜씨 가지고 계시는구나'
책을 읽다가 몇 년 전 아침마다 들리던 화장실 구토 소리를 떠오르게 했던 이야기 하나를 여기 짧게 소개해 봅니다.
처음 해 보는 아파트 생활이라 공연히 불안하다가 벽 하나 사이로 그 여자가 이웃해 있다고
생각하면 슬며시 마음이 놓였다. 가끔 그 여자의 어린 딸이 치는 서투른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도 즐거웠고,
큰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싫지 않았다.
요컨대 절대적인 단절을 보장해주리라고 알았던 두터운 콘크리트 벽이 인기척을 전해주는 게 반가웠던 것이다.
나는 그 여자와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이웃을 잘 만났다고 생각했고,
그 집 아이들을 보면 남다른 정을 느꼈다.
.. (중략) ..
달포 쯤 지나서 반상회 날이었다. 그 여자가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잘 못 이루었다. 제발 그 아름답고 착한 이가 오래살게 해주소서.
그날 밤도 그 후에도 나는 그 여자 일이 걱정될 때마다 이렇게 간절하게 빌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中에서
아파트 벽 하나를 두고 살다 보면 윗집, 옆집 소음이 거슬리고 신경쓰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시공을 잘못한 건설사를 원망하기는 커녕
본인에게 허락된 공간에서 잘 살고 있는 이웃에게 애꿎은 비난의 화살을 돌릴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뉴스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끼리 다퉜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칼부림까지 나서 사람이 죽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를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아이고, 오죽했으면...' 이렇게 층간 소음의 고통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래도 좀 참지.' 또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렇게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이렇게 누굴 원망하지 않게 된건 윗집 구토소리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들리던 구토 소리가 익숙해 졌을 때 즈음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는데
옆에는 따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한분이 할아버지 팔을 잡고 부축하고 계셨습니다.
여성분은 우리 집 위층 번호를 누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따님과 함께 잠깐 마실을 나갔다가 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서 있는 것조차 많이 힘겨워 보이셨습니다.
피부색과 입술이 매우 어두워 보였습니다.
저는 윗층의 아침마다 들리는 구토하는 소리가 술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두분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하루되세요.' 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실 입은 떨어졌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두분에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해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저는 그렇게 대신하고 싶었습니다.
그 뒤 몇 달 지나서는 윗층 할아버지의 구토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를 비난할 일이 생길 때면 그 때 일을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주문처럼 외워 봅니다.
'착해져라. 착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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