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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 - 좋은 일 한 거는 자랑 좀 합시다

스푸♡ 2025. 6. 19. 00:15

 

딱 20년 전 일이네요.

그 해 여름, 처음으로 취직을 하고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세금 떼고 나니 한 170만 원쯤 됐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TV에서 본 굶주림에 지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그 많지도 않은 월급 중에서
유니세프에 매달 5만 원을 후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냥 ‘딱 지른’ 거였죠.

 

그 후로는 돈이 매달 빠져나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당시는 주 5일 근무도 아니어서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한 주간이 54번 지나가면 어느덧 1년이 되었고
그때쯤이면 어김없이 연말정산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그제야 유니세프에서
'공제받세요'라고 보내온 우편물을 보고
'아, 맞다. 나 기부하고 있었지' 하고
문득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연말정산 사이트에 기부금 내역을 입력하고 있는데
옆자리 여자 동기가 힐끔 보더니 말했습니다.

"오지~ 너 기부도 해? 깔깔~"

그 친구는 웃을 때마다 늘 '깔깔'거리며 웃어서
우린 그녀를 그냥 '깔깔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지는 제 별명입니다.ㅎ)

 

기부금액을 본 깔깔이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오지~ 너 꽤 많이 한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뭐가 남는다고... 깔깔~"

 

줬으면 그만이지

 

이 책은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 모은 돈으로
남몰래 여러 단체를 지원하고 가난한 학생들을 후원해온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일종의 '잠입(?)취재 기록'입니다.

기부를 워낙 철저히 숨기셨던 분이라
그 규모와 액수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웠고
책을 쓴 기자님조차도 지금의 화폐 가치로 대략 계산해 본 결과
몰래 하신 후원금을 제외하고도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김장하 선생님은 

본인이 후원한 단체든 개인이든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 중 한 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앞서 남성당이 문 닫는 날 서울에서 찾아왔다던 그 장학생 김종명씨가 선생에게 말했다.
"제가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선생이 이랬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렇게 수많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면

행여 약간의 간섭이라도 해도 무방할텐데

공부의 성적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훌륭한 성품을 가지셨음에도 

김장하 선생님은

누군가가 본인을 자랑하거나 치켜세우는 걸 유독 꺼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아는 사람들만 알 뿐

그의 선행이 언론이나 매스컴에 보도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나마 그의 선행을 세상에 꼭 알리고자 했던 지인들과
후원을 받았던 이들의 진심 어린 증언 덕분에
김주완 기자님이 이렇게 '잠입 취재 기록'을 정리할 수 있었고

책으로도 출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에 다큐도 있다고 하네요.^^;

 

김장하 선생님의 선행을 알려야 한다는

김주완 기자님의 열정과 노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분은 누구든 나서서 이렇게 자랑해야 합니다.

책이든 다큐든 무엇이든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저의 기부금과 세금 공제 등록을 본 깔깔이양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알 수 있습니다.

 

몇 달 뒤에 그녀가 저한테 와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오지~ 나도 유니세프 기부하기로 했어. 금액은 비밀~ 깔깔"

 

좋은 일하는 거는 자랑 좀 해도 괜찮습니다.

그 자랑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되고

그렇게 선한 영향력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퍼져 나갈 수 있으니깐요.

 

P.S

수백억원 기부한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꼴랑 매달 5만원 기부한 걸 자랑하는 저의 패기 어떠신가요?ㅎㅎ

월급은 20년 전보다 좀 올랐는데 말이죠.

년말 정산 기부금은 20년 전 그대로인거는 안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