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 기록 보관소

긴긴밤 - 우리 본문

끄적끄적

긴긴밤 - 우리

스푸♡ 2025. 7. 13. 19:00

 
이제껏 제가 살아오면서 보냈던 많은 긴긴밤들을 하나하나 다시 떠올려 봅니다.
 
수능 시험이 끝난 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시험을 마치고 친구 녀석과 점수를 맞춰 본 뒤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불안과 걱정이 마음 한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우리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만 주고받으며
밤을 꼬박 새운 채 아침을 맞이했죠.
 
군대 전역을 앞둔 마지막 밤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영어 단어 ‘외모’의 스펠링이 헷갈린다고 했고
군대 동기는 이제는 수학 기호를 어떻게 읽어야 할 줄도 모른다고
복학하는 게 두렵다고 했습니다.
내일 전역할 병장 둘이서 도무지 잠에 들지 못 한 채
이런저런 수다로 밤을 채웠습니다.
 
부산 D병원의 진료 시스템 프로젝트,
그 오픈 전날 밤도 잊을 수 없습니다.
수십 년 치 환자 진료 정보를 새 시스템으로 이관하던 중
예기치 못한 오류가 터졌고, 결국 오픈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년 8개월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병원 진료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으로 모든 데이터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밤을 꼬박 새워 복구 작업을 마친 후,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병원 근처 돼지국밥집에서 늦은 아침을 함께 먹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일 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이
숟가락만 움직이기 바빴습니다.
 
...
 
그 외에도 저에게는 많은 긴긴밤들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밤 가운데
다행히도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긴긴밤
 
이 책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코뿔소와 펭귄입니다.
세상에서 단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흰바위코뿔소 노든,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없는 펭귄 치쿠
이 둘은 양동이에 담긴 펭귄 알과 함께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가는 길은 먹을 것도 부족하고 쉴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찾아오는 밤은 언제나 춥고 길기만 합니다.
그런 길고 긴 밤이 오면 치쿠는 노든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치쿠는 악몽을 꾸지 않게 해 주는 최고의 길동무였다.
앙가부의 말대로 치쿠와 얘기를 하다가 잠드는 밤이면
악몽을 꾸지 않고 깊이 잘 수 있었다.
그런 날엔 노든은 늦잠을 자서
치쿠가 부리로 엉덩이를 쪼아 대야 겨우 눈을 떴다.
"이 정어리 눈곱만 한 코뿔소야. 일어나!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직까지 잠을 자는 거야? 어서 먹을 걸 찾아 나서야지.
여긴 이제 먹을 게 없어. 우린 알을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되잖아.
야. 일어나라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치쿠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
노든은 알에 대해 딱히 별 관심은 없었지만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어쩐지 기분 좋았다.

 
그렇게 둘은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하며 바다를 향해 걸어갑니다.
 
긴긴밤은 코뿔소와 펭귄,
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동물이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용 동화책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긴긴밤을 맞이할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도 꼭 한번 쯤 읽어 봐야할 동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잠깐 여유를 내어
이 더운 여름을 날릴 시원한 바다를 머릿 속에 그리면서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