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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 덕후와 씹덕 사이 본문

저보다 7살이나 많으신 P책임님은 찐 덕후십니다.
그 분과는 아주 우연한 일로 서로 덕밍아웃(?)을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회사 다이어리를 회의실에 두고 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꽂혀있는 명함을 보고 다이어리를 돌려 주기 위해
직접 제자리를 찾아 오신 P책임님은 이렇게 첫인사를 건네셨습니다.
"덕력이 좀 있으신거 같은데... 혹시?"
다이어리에 제가 볼펜으로 끄적거린 만화 캐릭터 그림을 보시고는
'이 사람은 애니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덕후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시곤 동지(?)를 찾아 직접 오신 거였습니다.ㅎ
저는 어릴적부터 만화를 참 좋아했고
'공각기동대', '카우보이비밥'과 같은 유명한 애니도 틈틈히 챙겨서 봤던터라
P책임님과 애니로 대화가 잘 통하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양한 작품을 오랫동안 섭렵해 오신 P책임님의 기대를 만족시킬 만큼의 덕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임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엔 역부족이었죠.
그래도 P책임님께서 추천해주는 예전 작품을 찾아 보거나
분기별로 반영 중인 애니를 같이 보면서 아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2년 전 팀을 옮긴 후에도
P책임님과의 덕후모임(?)은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몇달 전에 개봉한 '진격의 거인'도 P책임님과 같이 보러 갔었고
8월에 개봉 예정인 '귀멸의 칼날'도 관람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덕후와 씹덕의 차이가 뭘까요?"
제가 P책임님께 한번 진지하게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P책임님은 좀 고민을 하시다가 대답하셨습니다.
"너의 이름은 팬미팅 때, 터진 혼모노 사건이 예가 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혼모노 사건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너의 이름은'으로 유명해진 신카이 마코토는 그 이전부터 한국팬층이 꽤 두터운 편이었다고 합니다.
'언어의 정원', '초속 5센치미터'로 이미 덕후들 사이에서는 촉망받는 신예 감독이었다고...
역시나 덕후들의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너의 이름은'은 초대박 흥행을 했고
그는 덕후들의 인기를 넘어 일반 대중들에게도 관심 받는 애니를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너의 이름은'이 흥행할 당시, 관객이 3백만을 돌파하자
배급사에서는 긴급 팬미팅을 열었고 이때 정말로 많은 애니 덕후분들이 행사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물론 P책임님도 그 행사에 참석을 하셨다고...
그때 팬미팅 장소에서 일명 혼모노 사건으로 불리는 그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책임님 왈,
"누군가가 갑자기 일본어 통역이 있는데도 일본어로.. 굳이 일본어로 질문을 하더라구요. 근데 흠... 일본어가 좀 별로...였어요.ㅎ"
"그런데 한명이 일본어로 하니깐 다들 막 일본어로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좀 많이 혼란스러웠죠."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못하는 사람도 있고... 정작 감독도 통역사도 이해 못하는 어설픈 일본어 하는 사람도 있고"
"좀 듣기 불편하고 많이 부끄럽더라구요. 행사장에 일본어를 아예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텐데..."
"서로 혼모노라고 자랑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서로 찐이야. 뭐 이런거죠. 그런데 그렇게 자랑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도 아닌데 말이죠."
"씹덕과 덕후의 차이가 이런게 아닐까 싶네요. 덕후가 팬이라면 씹덕은 관종이랄까?"
P책임님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하면서 일본인 여성분과 교제도 한 적도 있으십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꽤나 잘하시는 편입니다.
일본 애니도 자막 없이 충분히 보실 수 있는 능력자시죠.
하지만 거의 일본어를 잘한다는 티를 내신 적이 한번도 없으셨습니다.
제가 P책임님의 능력을 알게 된 것도
회사 근처에서 같이 산책을 하다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일본인이 우리에게 와서 어설픈 영어로 뭐라뭐라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근무하던 사무실이 계동(안국역)에 가까워서 가끔 외국인 관광객들과 이런 질문 받는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P책임님이 갑자기
너무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관광객에게 설명하는 걸 보고
그때서야 책임님이 일본어를 꽤 잘하신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P책임님은 진짜 찐...혼모노셨던거죠.
혼모노
성해나 작가님의 단편집 '혼모노'는 덕후들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책입니다.
이 책의 첫번째 단편인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에는 '너의 이름은 혼모노사건'과 결은 조금 다르지만듣기만해도 읽기만해도 불편해질 만큼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덕후들 대화가 묘사됩니다.
그들은 모두 시네필 내지는 평론가 같았다. '안타고니스트'의 각 장마다 다른 화면비가 사용된 것을 두고
'김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가변성이다', '아니다, 기성을 향한 반항과 탈주다' 논쟁하고,
나중엔 프리샌서 둘까지 합세해 '가변 화면비를 사용한 데는 다 철학적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럴 리가, 아이맥스 상영을 겨냥한 의도적 편집이다'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시네마스코프니 레터박스니 블랙바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중략)...
미지 선생님이 막 입을 떼려 할 때, 누군가 우리를 보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총대였다. 회원들이 왜 웃냐고 묻자 총대는 미지 선생님과 나를 가리켰다.
아니, 저 선생님들 너무 귀여우셔.
왜요? 뭐라고 했는데요?
감독님 영화 뭐 좋아하냐고, '인간 불신'이 특히 좋으시대. 너무 귀엽지 않아?
총대의 말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세상에는 우리 말로 '찐', 일본 말로 '혼모노'라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건 비단 영화나 애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클래식, 미술, 운동, 요리, 낚시, 자동차 등등
어떤 분야든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누구나 덕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덕후가 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세 가지 길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흥미를 잃고 덕질을 그만두는 사람.
다른 하나는, 꾸준히 관심을 유지하며 덕후로 조용히 남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덕후임을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인정받으려 애쓰는 덕후가 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마지막 덕후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건지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씹덕'이라는 비아냥을
애니 덕후라는 이유로 그냥 듣고 있기는 좀 많이 억울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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