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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신선한 공포 본문

끄적끄적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신선한 공포

스푸♡ 2025. 8. 10. 23:00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밖으로 나가야만 했죠.
겨울에는 추워서 나가기 귀찮았고 여름에는 온갖 벌레들 때문에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소변을 억지로 참으며 화장실 가기를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어두운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화장실까지 가는데 그리 오래 걸지 않았습니다.
마당을 지나면 대문 옆에 바로 있었죠.
하지만 거기까지는 가는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
갑자기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 잡히면
팔다리에 털이 온통 빠짝 서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대충 볼일을 마치고 후다닥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고 있으면
아주 먼 거리를 전력 질주한 듯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집 밖의 화장실이 있는 덕분에
본의 아니게 이렇게 담력 훈련을 자주 하게 되니
어릴 때도 꽤 무서운 공포 영화나 다큐를 봐도
크게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포 영화에 나름 내성이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보게 되었죠.
영화 '링'을 말입니다.
고등학생 2학년 때 친구 집에서 비디오 테이프로 '링'을 봤습니다.
제법 머리가 굵어진 때고 자신만만하게 보다
TV를 뚫고 나오는 '사다코'를 보고 충격을 받았죠.
특히 긴 머리 사이로 살짝 보이는 눈빛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은 하도 그 장면을 콘텐츠로 우려먹어서 거의 개그 소재가 되어 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담력이 좀 있다고 허세를 부렸으나 영화를 본 후,
늦은 새벽 물 한잔 마시러 나왔다가
마루에 있는 TV를 보고 흠짓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처녀귀신과 저승사자.
오컬트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심령사진.
공포물이 그 지점에서 크게 진전없이 고만고만한 이야기만 반복되는 시절이었습니다.
'링'이 그 당시 공포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식상한 소재를 탈피해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TV와 비디오테이프를 소재로 한 공포물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이 책 역시 이런 '일상 속 소재의 공포'를 이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식상한 괴담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우리 삶에 일상이 된 인터넷 방송이라는 설정이 적절히 중간중간마다 섞여 있습니다.
 
심령 스팟을 인터넷 라이브 방송하는 에피소드는 꽤 섬찟하게 읽은 거 같습니다.

【2020년 5월 27일 라이브 방송 아카이브 〈유키히로의 심령 스폿 채널〉에서】
※현재 채널은 삭제된 상태로, 여기에는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동영상 속 음성을 그대로 따서 실음.  
(라이브 방송 시작)  
안녕하세요, 오늘도 씩씩하게 심령 스폿으로 돌격하는 유키가 왔습니다.
음, 오늘은 말이죠, 요청이 많았던 ●●●●●! 드디어 그곳을 찾아갑니다.
거기, 이 채널 시청자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긴키에서 가장 무서운 심령 스폿이라고 불리는 곳인데요,
뭐니 뭐니 해도 볼거리가 많으니까요, 댐에 폐허에 터널까지, 이거 뭐 심령 스폿 백화점이죠,
어차피 갈 거 전부 가버리자 싶은데, 일단 제1탄으로 ●●●●● 터널을 한번 가 보겠습니다.
보자, 댓글에서도, 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라고 하니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지금 차 안이에요, 여기서 내리면 바로 터널 입구니 까요, 다들 준비되셨나요.  

(문 여닫는 소리)
...

 
그리고 쓰레드라는 방식의 라이브 댓글로 전개되는 에피소드도 꽤나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채팅으로 1층 쿵쿵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뭔지 보려고 내려간다는 채팅만 남겨졌을 때는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76: 긴키 군조: 2011/01/15(토) 14:19:55
ID:H7cKvHk1c 이거 말곤 아무것도 없는 거 같다 소리도 멈췄고 아래층에 내려가 볼까  

277: 무명 씨: 2011/01/15(토) 14:21:01
ID:pg3bZhYtu
이제 그만 나오는 게 낫지 않나?  

278: 무명 씨: 2011/01/15(토) 14:21:38
ID:gBbp5D2vd 여기까지 온 이상 전부 보자 군조  

283: 긴키 군조: 2011/01/15(토) 14:23:32
ID:H7cKvHk1c 아마 소리가 났던 다다미방에 왔다
※링크가 끊어진 URL※
....

 
물론 링의 'TV와 비디오테이프' 에서 느꼈던 신선한 공포감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기법은 장르는 다르지만 영화 '블레어위치'나 '곤지암'에서 오래전에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단점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나눠져서
처음 도입부는 집중해서 읽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몇몇 에피소드는 그 한참 전의 이야기와 엮일때도 있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점.
아.. 이 부분은 혹시나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세스지'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분의 인터넷 연재소설이라고 합니다.
연재 초기, "여덟 분이나 읽어 주셨다"라며 작가님이 기뻐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연재가 될수록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고
블로그 연재 완결이 되자마자 책으로 출판까지 되었다고...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이번 달 13일 개봉이라고 하네요. 아.. 얼마 안 남았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책 내용대로 긴키 지방의 이야기가 세상에 결국 퍼져버렸다는 건데...???
허... 갑자기 무서워지는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