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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초역 부처의 말 - 왈도체

스푸♡ 2025. 7. 21. 06:00

 
 
 
혹시 '왈도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

 
위의 문장은 바로 '왈도체' 라는 전설적인 문체의 기원이 된 명대사(?)입니다. 
이 독특한 말투는 예전에 제가 소개했던 '신박하다'처럼 게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왈도체'는 롤플레잉 게임인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에서 탄생이 했습니다.
'마이트 앤 매직'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게임 시리즈 중 하나이며
국내에는 1997년에 시리즈 중 여섯번째 작품이 처음으로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트 앤 매직이 국내 출시하기 전
국내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키운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퍼블리싱을 담당한 국내 업체가
게임의 모든 영어 대사를 완전 한글화하겠다는 발표였습니다.
당시로선 꽤 파격적인 결정이었고
많은 게이머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죠.
 
그리고 첫 정식 출시
  
마이트앤 매직 게임이 시작되자 한 NPC가 등장합니다.
그 NPC의 이름은 바로 왈도.
그의 첫 대사:

Hello, Mighty fine morning, If you ask me, I am Waldo.

 
이 대사는 번역을 거쳐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로 번역 되었고
이 한 줄로 인해 지금까지 회자되는 독특한 문체 '왈도체'가 탄생하게 된 거죠.

왈도체 그 전설의 시작...

 
 
'마이트앤 매직'은 텍스트가 아주 중요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등장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다음 임무와 진행 방향을 파악하며 게임을 이어갑니다.
NPC의 대사를 들은읽은 뒤, 플레이어는 어떤 길로 나아갈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스토리는 여러 갈래로 나누며 전개됩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지하실에 모여 즐기던 게임 '던전앤드래곤'이
바로 이런 류의 게임의 효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을 계속 진행하려면 영어 대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대사를 잘못 해석하면 게임의 결말이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플레이어 본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퍼블리싱 업체는 국내 게이머 누구나 이 게임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완전 한글화를 약속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마주한 첫 번역은...
 
"힘세고 강한 아침, ... 나는 왈도"
 
 
초역 부처의 말
 
책의 제목에 쓰인 '초역'은 말 그대로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 번역한다는 의미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저는 의심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한 때 서점가에 유행했던 '당신을 OO하게 만드는 100문장' 같은 류의 명언집을 설마 만들겠다는건가?
 
마치 중고등학생을 위한 입시용 필수영어단어집처럼
비슷한 분류의 문장과 단어를 모아서 책을 엮지는 않겠지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아, 그냥 영혼 없는 명언집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는 편이라
억지로 꾸역꾸역 마지막 페이지까지 겨우 읽었습니다.
 
거기에 작가님(번역가님)의 인사말도 책을 읽는 동안 무척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 발췌해 봅니다.

제자 중에서도 출가한 수행자에게 부처가 직접 설법한 내용들이라
현대를 사는 평범한 우리에게는 너무 엄격하거나 감각적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여 그 간격을 잘 메우기 위해 구절의 핵심은 보존하는 한편,
과감하게 말을 줄이거나 제 나름의 새로운 발상을 덧 붙이는 식으로 각 구절을 다듬었습니다.
그 때문에 언뜻 원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초역'된 부분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 두고 싶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말해 놓고도
실제로 어떤 부분이 '초역'인지 전혀 설명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각 페이지 하단에 "증지부경전", "상응부경전", "법구경" 등
출처만 성의없이 한 줄 적어 놓고는 끝

차라리 오역이 되더라도 원문을 함께 소개하고
그 번역이 왈도체가 될지언정
직역이든 의역이든 오역이든
말씀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과 뜻을 덧붙였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정독할 수 있는 의욕이 생겼을텐데 말입니다.
좋은 발상과 소재로 책을 기획해 놓고 너무 성의없이 출판한게 아닌지...
 
저의 생각이 담긴 짤 하나 남기며 글을 마칩니다.
 

차라리... 오역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