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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마흔은 아직은 모자란 것 같다

스푸79 2025. 1. 17. 07:00

취업에 성공하고 첫 직장에서 프로젝트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강남에 있는 대형병원 신규 전산시스템 프로젝트였는데

꽤나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고

많은 인력이 투입이 되었기에 꼭 반드시 납기일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만약 납기일을 준수를 못하면 하루하루 연기 될때마다 후덜덜한 위약금을 우리 회사가 내야하는 상황이었죠.

 

거기에 고객님께서는 오픈일을 준비하여 언론에 홍보까지 해 둔터라

우리는 배수의 진을 친 상황까지 몰렸고

개발팀은 말 그대로 지옥같은 크런치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수였고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6일제라 토요일도 출근했답니다.^^

 

그때 함께 일하던 동기들과 야근하면서 저녁 먹으러 갈 때

우리가 나중에 관리자가 되면 이런 거지같은 IT 회사 분위기를 같이 바꿔보자며

희망찬(?) 내일을 얘기하던 기억납니다.

 

이제 딱 마흔 중반 회사에서도 관리자급에 속하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아직 관리자가 아니라 안도를...)

IT회사 분위기 바꿔보자며 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이들은

이 바닥을 뜬지 오래 되었고

생존에 성공한 내가 생존에 성공한건지 그냥 숨만 붙어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IT회사 판을 뒤짚어 엎을 것 같던 열정은 사라져 버렸고

따박따박 주 40시간 지켜가면서 칼퇴하는 MZ세대 개발자와 관리 업체 PM에게

하도급법에 걸릴까봐 마음 졸이며

독촉조차 편히 못하는 힘없고 책임만 지는 PM이 되어 버렸네요.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자기 결정권이 없어서이며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비로서 행복해 질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신입 사원이던 20년 전이나

중견이 되어 프로젝트 PM을 맡고 있는 지금이나

자기 결정권이 없는 건 매 한가지라

그래서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거 같습니다.

 

 

이 책에 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이고, 그 다음 30년은 그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마흔이 되면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이기에

인생의 남은 시간을 40년 동안 채운 것들을 정리하면서 보내라는 뜻인거 같은데

그냥 저는 나이만 차곡차곡 먹었을 뿐

여전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20대의 나와 크게 차이가 없는거 같습니다.

 

어찌됐든

요즘은 100세 시대라 이 명언에서 언급한 숫자는 조금 더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주석을 논하기에는 마흔은 아직은 많이 모자른거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벌어야

아직은 많이 부족한 저의 인생의 본문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