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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의미가 아닌 욕망 본문

살면서 가장 무료하고 의미없는 일을 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없이 군대에 있을 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나라를 지키는 숭고한 일이 의미가 없다고?'
라고 이렇게 따지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2년 2개월의 군생활을 하면서
'내가 정말 나라를 지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건 제가 진주에서 군생활을 해서 그런 것도 있을 듯 합니다.
진주는 최후방이다 보니 군인이 하는 군사 훈련은 그리 많지가 않았습니다.
흙을 파내는 삽질이나 땅을 까는 곡갱이질,
장마 뒤에 피해를 입은 농가를 찾아가 수리를 도와주는 대민지원 업무
이런 것들이 훈련보다 훨등하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부대 내에 주임원사가 키우는 밭에 예초기를 돌린다거나
많은 비로 인해 흙으로 훈련장이나 진지가 주저 앉아 그걸 보수하러 간다거나
돌이켜 보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였다기 보다는
아주 싼값에 다양한 잡일하는 일꾼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애국심이나 자부심 같은 숭고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2년 2개월동안
'시간아~ 제발 좀 빨리 가라.'
'전역하면 복학해서 실컷 놀아야지'
이런 욕망을 불태우며 그 시간을 버틴 것 같습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 책은 미술관 경비원으로 십년동안 일을 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도시의 중심부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던 사람이,
스스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일부러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려 한다?
과연 그런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경비원은 거의 열에 아홉은 무능하고 불성실한 인물로 묘사되곤 합니다.
악당들에게 저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제압 당하거나,
CCTV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바람에 악당에게 기회를 준다거나 말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경비원이 무능하게 그려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비원에게 막혀버리면 원래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없을테니깐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늘 희생양이 되는 걸 보면, 확실히 인기 있거나 선망받는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경비원을 선망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비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성취감을 느낄 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
경비원은 일의 의미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직업입니다.
입구에서 가방을 검사한다거나
예술 작품을 직접 만지려고 시도하는 사람을 제지한다거나
길을 잃은 방문객에게 길을 안내를 해주는 정도가 그의 업무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안내마저도 대부분은 관람객에게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는 정도였죠.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쌓였던 불만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을 일부를 발췌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에 대해 의견을 같이한다.
그렇다고 심각하거나 못된 말을 하는 건 아니고 일상적인 가벼운 불평들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다가와
"저기요, 화장실이 어디 있나요?" 혹은 심지어 "화장실 어디었어?"라고 묻는 대신 "화장실!" 한마디만 내뱉는 관광객들은 우리가 음성 명령으로 작동하는 로봇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일까?
기나긴 작품 설명을 다는 큐레이터들은 모든 관람객들이 석박사 공부를 하면서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지를 읽고 싶은 소원을 비밀스럽게 품고 온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본인도 미술관 경비원 일을 하면서 느낀 사회적인 불합리한 시선과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이렇게 토로를 합니다.
여러 인파를 이끌며 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큐레이터보다 본인이 훨씬 더 많은 예술작품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본인을 그냥 화장실 안내원 정도의 취급하니 속으로 정말 많이 억울했을 듯 합니다.
그래도 작가의 나이 또래 사람들이 3~4년 정도 경비원 일을 하다 그만두는데 비해
그는 십년이란 긴 시간을 묵묵히 자리를 지켜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예술작품과 가까이하며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그의 예술에 대한 지식을
이 책을 통해서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너무 많이 쏟아내서 초반에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쫓아가다 중반 이후로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최저 시간도 안되는 군인 월급으로 곡갱이질과 삽질 하는 걸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던 이유,
이 책의 작가 브링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경비원 일을 10년을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슨 숭고한 의미 따위를 일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역하면서 내 젊음을 마음껏 누리겠다는 나의 욕망,
예술과 관련된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욕망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찰리 채플린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What do you want a meaning for? Life is a desire, not a meaning.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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