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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들린다-언제부터 그녀를 좋아했을까?

스푸79 2024. 9. 30. 07:00

 
나는 진주에서 군생활을 했다.
그 지역 일대 진주 출신과
부산 지역 일대의 경남 출신들과 함께
2년 2개월동안 육군으로 복무를 마쳤다.
부대 전체를 통틀어 서울 사람은 2~3명 뿐이었고
중대 내에 사투리를 쓰지 않는
순수한 서울 토박이
거의 나 뿐이었다.
그 지역분들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나는 '서울 촌놈'이었다.
 
계속 사투리 쓰는 분들과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말투에도 경남 지방 사투리가 점차 녹아 들어갔다.
가끔 동기들한테
'니 으슬프게 사투리 쓰지마래이~'라며
한 소리 들었는데
나는 절대 사투리를 쓰지 않았음에도
그런 소리를 제법 들었다.
아마 뭔가 미묘한 억양을 나도 모르게
흉내를 냈었나 보다.
나는 절대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그게 어떤 때는 놀리는 것처럼 동기들에게 들렸던 것 같다.
 
지방을 벗어나 타지에서 생활을 새로 시작할 때
특정 지방 사투리를 쓴다는 건
큰 컴플렉스가 될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같은 지방 출신들끼리 모였을 때
소속감을 주기도 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사투리는
그 지방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내가 군대에서 어설픈 사투리를 쓰다가
동기들에게 혼났던 것처럼
지방의 말투를 의도적으로
희화화하거나
비하의 도구로 삼으면
지역 전체를 공격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바다가 들린다' 에서
타쿠가 리카코에게 따귀를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한테 그런 무식한 싸다귀 공격을 할 줄이야.
좀 오버하는거 연출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수긍이 갔다.
리카코의 말은
지역비하 내용이라 그 지방 사람이라면
충분히 발끈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리카코는
타쿠의 베프 유타가의 고백에 이렇게 답한다.
'너 뿐만 아니라,
시코쿠 지방 사투리를 쓰는 남자랑은
앞으로 절대 사귀는 일은 없을 거다.'
 
자기의 베프인 친구를 차는 것도 모자라
지역 사투리까지 비하하는
그녀의 대답에
감정적으로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화를 주체할 수 없던 타쿠는
리카코에게 따지러 갔다가
서로 따귀를 주고 받는 얼척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작품 내내
한번도 감정적으로 흔들림이 없던 타쿠
그가 손찌검을 할 정도로 크게 화를 낸 이유는
사실 다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스스로 절대 받아드리지 않았던 감정
가장 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애써 계속 외면했던 감정을
타쿠는 그녀와 크게 싸운 후에 느꼈을 것이다.
진짜 그가 화난 이유는
그녀의 고백에 차인 건
친구 뿐만 아니라
자기도 포함이 된다는 것에 말이다.
(본인도 시코쿠 지방 사투리를 쓰는 남자니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타쿠는 동경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된다.
 
물론 작중에 동경 여행을 하면서
동경에 있는 대학을 목표를
공부하겠다고 했지만
전교 100등도 겨우 들던 그가
동경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허리 춤에 꼭꼭 숨겨 둔
비상금 6만엔이라는 거금을
타쿠가 리카코에게 쉽게 빌려 줄 수 있었던 이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하철 반대편 플랫폼 먼 끝에서도
한 눈에 리카코를 알아 볼 수 있었던 이유...

친구 때문에 마음 속 깊이
본인도 모르게 숨겨 놓은 그 말을
작품이 끝날때서야 겨우
실토하듯 고백한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고